티스토리 툴바


책과영화2012/01/19 13:32

플러그를뽑으면지구가아름답다철학하는발명가후지무라씨의비전력화?
카테고리 기술/공학 > 환경/소방/도시/조경
지은이 후지무라 야스유키 (북센스, 2011년)
상세보기

이 책은 지난번에 읽었던 유기농업에 대한 '기적의 사과'와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들과 공생의 삶을 살아보자는 이야기이다.
기적의 사과 전자제품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지구를 구하는 20가지 비전력 제품의 상세한 설명과 구조도 및 만들기 매뉴얼 수록'이라는 부제가 있다.
전자제품 설명서를 연상시키는 부제 대로 갖가지 비전력 제품 만드는 방법이 나온다.
철학하는 발명가 후지무라씨는 비전력 제품들이 누구나 ‘만들기 아주 쉬운’ 것들 이라고 하지만 그닥 만들기 쉬워 보이진 않다. 내가 만들수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없이 얼마나 유쾌하게 읽었는지 모른다.

보통 환경론자, 생태주의자들의 주장은 옳지만 불편하다. 내 일상을 바꾸는데 가히 '혁명적 수준'을 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사는게 좋아. 그런데 이렇게 사는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물론 모조리 이렇게 할 필요는 없지. 마음 내키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자기 자리에서 해보는게 어때?' 하고 만다.
그러니 '그래? 그럼 나도 뭔가 좀 해볼까?' 싶어지는거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첨단 가전제품을 써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냥 튼튼한 기계식 전자제품 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쓰지도 않는 기능이 잔뜩 붙어있는 제품만 진열되어 있는 것인지, 왜 더이상 기계식 제품은 만들지 않는 것인지, 왜 값싸고 튼튼한 전자제품은 없는 것인지 늘 의문이었다.
비밀은 자본주의에 있었다.
자본주의가 삶의 편리함을 내세우며 첨단 전자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면서 지구 자원을 좀먹고 있다.

책을 읽다 가장 깜짝 놀랜 것은 ‘대기전력’의 손실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대기전력이란 전기제품이 동작을 하지 않고 있을 때 소비되는 전력을 말한다.
본체가 리모콘의 신호를 대기할 때 사용되는 전력 같은 것들이다.
어떤 제품의 대기전력은 그 제품을 사용할 때보다 전력 소모가 더 많다.
비디오 데크는 사용할 때보다 대기 시에 10배의 전력을 더 많이 소모한다니 차라리 하루 종일 켜놓는 것이 전력 소모가 덜한 것이다. 맙소사!!!! 정말 놀랍지 않나?

리모콘, 시간 표시, 센서 감지 자동 작동 등이 제일 전력 소모가 많다고 한다.
인간이 'on' 하는 순간에 반응하기 위하여 24시간 대기하면서 전기를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가정용 소비전력의 10.3%가 대기전력으로 추산되며 이는 원전 4기에 해당하는 전력량이라고 한다.

인류의 편리를 위해서 전기를 써야한다면, 촛불 켜고 사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고 하자.
하지만 ‘쓰지 않는 전기’, 비효율적으로 낭비되는 전기가 내가 사용하는 것보다 엄청나다는건 너무 억울한 일 아닌가?

또한, 그것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우리가 굳이 일상에서 우주개발에나 사용함직한 첨단 제품을 쓰는 것은 오로지 자본의 이윤추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플러그를 뽑는 행동에 동참하자.
이 엄청난 모순에 극렬하게 저항할수 없다 하더라도 '플러그를 뽑는 것' 많으로도 우리는 모두 게릴라가 될 수 있다.

(스위치가 달린 콘센트를 사용하는 것 만으로도!)

지금, 플러그를 뽑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작은풀

‘가사노동 사회화’를 위한 새로운 모색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선민 (곽정숙의원실 보좌관)

 

몇 차례 말했지만, 나는 결혼 후 8년 동안 농사를 짓다가 민주노동당 보좌관이 되어 8년 째 국회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 서울에 와서 일하게 되었을 때 받았던 ‘문화적 충격’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에어컨 빵빵 나오는 사무실에서 일하면 한여름에도 바깥이 얼마나 더운지 잘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부부는 비닐하우스에서 꽈리고추를 재배했었는데 여름에는 하우스 안에 들어간 지 채 10분이 되지 않아 찜질방에 들어온 듯 땀이 줄줄 흐른다. 동네 사람들은 한낮의 더위는 피해서 일하기도 하건 만은 우리는 한낮의 더위라고 가릴 처지가 못 되었다. 두 필지 고추밭은 부부가 감당하기에 상당히 넓었다. 한 고랑 다 따고, 다음 고랑을 따고 나면 앞의 고랑 고추가 또 자라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회의다 교육이다 그때도 지독히 바빴던 우리 부부는 ‘일할 수 있을 때’는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기온보다 체감온도는 몇 십도 더 높은, 무더운 환경에서 내내 일을 하다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에서 일하려니 처음에는 ‘미안해서’ 적응이 잘 안되었다.

 

내 마음이 더 괴로웠던 것은, 노동자들이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권리인데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다 자꾸만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격차’처럼 느끼는 나의 ‘저렴한 인식’ 수준 때문이었다.

 

또 하나는 많은 여성들이 가사도우미(정식명칭은 ‘가정관리사’ 이지만 좀더 대중화된 용어인 가사도우미를 사용함.)를 따로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정말 다른 세계였다. 운동권 중에서도 활동비의 삼분의 일을 할애해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해주는 사람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좋은 가사 도우미를 구하지 못해 애 먹는 동료를 볼 때에 나는, 뭐라 반응하기 어려운, 몹시 복잡함 심경이었다.

 

여성농민은 어느 누구도 가사 도우미를 따로 쓰지 않는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다만,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여성농민들은 산후 조리가 끝나면(산후 조리조차 제대로 못한 경우도 많지만) 그 때부터는 아이를 키우고, 집안 일을 하고, 농사일을 하고, 갖가지 활동을 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이 되어 버린다. 그 중 어느 것도 ‘남의 손’에 맡기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가장 힘들었던 노동으로 갓난 아기를 포대기로 들쳐 업고 일했던 ‘오이농사’를 꼽는다. 오이는 매일매일 따고, 순을 치고, 덩굴 줄기를 옆으로 이어가야 한다.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다음날 일은 두 배가 아니라 서너 배로 많아진다. 오이 수확이 시작되면 수확이 끝날 때까지 아플래야 아플 수도 없었다.

 

그냥 업고만 있어도 힘든데, 그 아이를 업고 하루종일 서서 일하니 허리와 무릎은 늘 끊어질 듯 아팠다. 게다가 오이는 잎과 줄기에 잔 가시가 있다. 아무리 조심해도 아기의 여린 살은 가시에 쓸려 피가 맺히고 부어오르기 일쑤였다. 밤마다 쓰리고 아파서 우는 아기를 달래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밥을 해서 먹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며, 아기 목욕도 시켜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은 매일 되풀이 되는 일상이다. 여성농민 대부분은 그렇게 산다.

 

나는 지금껏 모든 집안일을 ‘내 손’으로 해왔다. 물론 ‘모든 일’을 ‘전적으로’ ‘내 손’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이 상당히 많은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도 일찍부터 집안일을 해왔다.

(막내가 태어났을 때는 친정어머니가 도와주셨다.)

 

하지만 아무리 가족 모두가 함께 한다지만 아직도 ‘내 손’만을 기다리는 것들이 있다. 그러니 나는 지금도 사무실에서 퇴근 하는 시간이 몇 시든 그 시간이 ‘집으로 출근’하는 시간이 된다.

 

운 좋게 6시에 퇴근하는 날은 7시 부터 집안일을 한다. 모처럼 일찍 들어왔으니 밀린 집안 일, 철지난 옷 정리나 목욕탕 곰팡이 제거, 따위를 해야 한다. 10시쯤 퇴근할 때가 가장 ‘빡센’ 날이다. 그 시간 부터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설거지를 하고, 재활용품을 내놓고, 빨래를 개고, 청소를 하고, 내일 먹을 멸치볶음을 만든다.(차라리 더 늦게 오는 날은 ‘내일 해야 겠군’이라고 마음먹게 된다.)

 

요즘은 청소나 밑반찬 만들기 따위는 주말에 몰아서 한다. 빨래도 주말이면 보통 세탁기를 4차례 돌리지만 주중에도 두 번 정도는 빨래를 해줘야 양말과 속옷, 수건이 없다는 아이들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다. 어쨌든, 일찍 퇴근한 날이건 늦게 퇴근한 날이건 집안 일을 마치면 늘 새벽 한시다.일상은 결코 우아하지 않다. (밤을 새고 들어가면 한숨 자기에 앞서 ‘이른 새벽’부터 집안일이 시작된다.)

 

내가 계급사회의 노예도 아닌데, 도대체 왜 아침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이렇게 많은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 울컥해지기도 한다.

 

2009년 말 한국 인구학회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남성보다 훨씬 많다. (여성과 남성 간 비교를 그다지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이 그러하긴 하다.) 하루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이 0.6~1.1시간, 여성이 3.1~4.8시간이었다. 부부 모두 수입이 없는 가정에서조차 남성의 노동 시간은 1.6~3.2시간인 반면 여성의 노동 시간은 5.3~8.2시간에 달했다. 2010년 3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의 가사노동은 1일 42분으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다.

많은 여성들이(전업 주부든, 일하는 여성이든) 가사노동에 지쳐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난 여름 이후 부지기수 밤을 새며 일했고, 주말에도 출근을 했다.집안도 아이들도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누군가 조심스레 묻는다. 집안 일을 해줄 사람을 쓰는게 어떠냐고. 생각할 여지도 없이 나는 고개를 젓는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없는 이유 첫 번째는 물론, 돈이 없어서다.

 

두 번째는 나보다 더 힘든 노동을 감당하며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지만 나는, 아직은 그럴 수 없다.

 

세 번째는 내가 여전히 가사노동을 객관화 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사거나 가사노동을 사회화 하려면 나로부터 분리하여 새로운 ‘노동영역’으로 인정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가장 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래서야 발전이 없다.

 

나처럼, 많은 일하는 여성들이, 많은 활동가들이 ‘가사노동’에 대한 고민을 ‘개인적’으로 해결해 왔다. 가사노동 사회화가 얼마나 해묵은 주제인지를 생각한다면 이는 매우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게다가 어느 때 부터인가 가사노동은 ‘돈’만 있으면 ‘싼값’에 ‘사회화(시장에 의존하는 것도 사회화라고 볼 수 있다면)’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일 뿐더러 여성을 위해서도, 노동자를 위해서도 결코 좋지 않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착취 구조가 공고해 질수록 가사노동은 부차적인 것, 몰가치한 것으로 취급된다.

 

2009년 한국고용정보원 발표에 따르면, 가사노동자(가사도우미보다 좀 더 복합적 개념임)의 월 평균 임금은 68만3000원이라고 한다. 이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401개의 직업 중 두 번째로 적은 액수다. 30~60만 명에 이르는 가사노동자 중 여성 비율은 99.8%에 이르며, 평균 연령은 53.3세니 잉여 노동력으로 삼기 쉽다. 70년대 저곡가 정책이 저임금의 기반이 되었듯이 가사노동에 대한 저평가 역시 저임금 노동착취의 하부구조가 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상황이 비슷했던지 2011년 6월, 가사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가사노동협약'이 100차 ILO총회에서 채택되었다. 감개무량하다. 정부는 협약에 찬성했지만 국회비준 추진에는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그럼 도대체 왜 찬성을 한 건지.) 또한 근로기준법은 “이 법은 가사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가사노동자를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최저임금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등도 명시적으로 가사노동자를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정부는 신속히 가사노동협약 비준 절차를 밟아야 하며, 국회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2011.9.30 경향신문 -윤지영변호사 기고)

 

자본의 고도화에 따른 노동력 착취 구조가 깨지지 않는 한 나의 일상은 더 찌들어갈 것이 자명하다. 재생산을 위한 휴식은 노동자의 권리다.

가사노동이 가치를 인정받고, 새로운 시각에서 재논의 되지 않는 이상 ‘재생산의 권리’ 따위는 안드로메다에서나 찾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나도, 집으로 퇴근하고 싶다. 누군들 하루에 두 번씩 출근하고 싶겠는가.

 

선거에 대한 언급을 덧붙여야겠다. 선거는 생활과 정책을 연결시키기 가장 좋은, 일종의 열린 마당이다. 선거의 결과는 내 생활의 모든 순간과 직접적 연관이 있으므로 선거의 모든 과정도 그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의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이번 선거는 여성에게는 ‘패배’한 선거라고 감히 말한다. 여성의 삶과 직접 연관된 어떠한 쟁점도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여성’이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등장하였으며 그 여성 후보가 ‘여성’의 정체성보다 ‘가정이 행복한 생활특별시’를 내세웠는데 어떻게 이를 둘러싼 논쟁이 전혀 없었는지 놀라울 뿐이다.

 

예전에 박근혜 씨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여성계의 ‘생물학적 여성 후보’에 대한 지지 논쟁조차 없었던 이번 선거에서 ‘여성’은 철저히 객체가 아니었나 싶다. 심히 안타깝다. 오히려 반대 측 지지자들의 여성에 대한 폄하만 난무했다. (후보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이것은 정말 불쾌했다. 진보 지지 세력의 여성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여성정치인’의 대두와 ‘여성들의 삶’ 사이에 관련성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끝없이 돌을 굴려야 하는 시지푸스의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들과 노동자로써의 권리를 인정받고자 하는 가사노동자 사이의 연대가 ‘정치적’으로 표현되길 바란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작은풀

성인지 예산을 아시나요?



박선민 (곽정숙 의원실 보좌관)




올해 처음으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맡았다.

2011년 정부의 통합재정 수입은 284.8조원, 지출 및 순융자의 규모는 279.5조원이다.

사실 우리나라 재정지출은 OECD 국가들에 비해 규모가 작다.

OECD 국가 평균은 GDP 대비 40%, 유로지역은 거의 50%에 이르지만 우리나라는 2011년 기준 GDP 대비 28% 수준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한눈에 보는 대한민국 재정 2011). 세입도 줄이고, 지출도 줄이는 ‘작은 정부’를 유지하고 있다. 사회보장 수준이 낮은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지출을 줄인다’는 것은 곧 ‘복지 축소’를 의미한다.



예결특위의 첫 번째 과제는 2010 회계연도 결산심사였다.

결산을 시작할 때는 쏟아지는 자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결산심사를 마치고 나니 국가예산을 집중해서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산에 국가 정책의 방향이 모조리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예산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국가 운영 철학이 담겨 있다.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복지 예산에 우선 순위가 반영되고, 토건국가로 나아가려면 건설 예산에 우선 순위가 반영된다.

정부 정책 방향은 사실상 중기재정운용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확정된다.

정부는 5년, 10년 단위의 재정운용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이에 입각하여 단 년도 예산을 편성한다. 이미 정해놓은 방향에 따라 세부 예산이 배분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중기재정운용계획은 국회 심의를 받지 않는다. 국회는 단년도 예산만 심사 한다. 그러니 국회가 예산 심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봐야 이미 정해진 원칙에 입각해 편성된 당해 연도의 예산 뿐이니 운신의 폭이 매우 좁다. 많은 국회의원들이 심도 깊은 심의보다 지역구 예산을 따내는데 집중하는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인지 예산이 혜성처럼 등장하였다.




2006년 국가재정법이 제정되면서 법적 근거가 마련된 ‘성인지 예산’은 2010년 예산부터 반영되었다. 2010년 성인지 대상 사업은 29개 기관, 195개 사업, 7.4조 규모였다.

‘성인지 예산’은 예산이 성별에 따라 미치는 효과를 예산 편성 과정에서 고려하여 성평등한 방식으로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다.

성인지 예산은 정말 중요하지만, 상당히 어렵다.

성인지 예산은 특정 사업에 대한 배분의 문제가 아니라 ‘성평등한 자원 배분의 과정’이기 때문에 중요하고, 그만큼 어렵다. 성인지 예산은 공평한 예산 분배에 대한 이야기일 뿐더러 성평등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성인지 예산은 정책과 재정 운용 전반에 걸쳐서 성평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책임성을 강화하여 성평등을 확산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성인지 예산은 여성을 위한 별도의 예산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또는 예산을 남성 대 여성으로 1:1 배분하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평등에 대한 왜곡된 시선도 이와 비슷하다.)

예산으로 인한 성별 영향을 분석하고, 그 예산이 성평등한 방향으로 쓰이도록 ‘배분’하자는 것이지 배분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이러니 쉬울 리가 없다.


성인지 예산의 중요성은 사례에서 더 잘 드러난다.

노르웨이의 경우 농촌 여성의 이농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고 한다.

식량농업부가 농업발전기금을 분석한 결과 기금의 85%가 남성 농업인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후 매년 농업발전기금의 성별 배분현황을 분석하고 지속적으로 기금 배분의 성별 격차를 축소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4~5년 후 기금 수혜자의 성별 격차가 감소하였고, 여성의 소자본 창업이 활성화되자 농촌에 정착하는 여성들이 증가하였다. 오랫동안 노르웨이 정부를 고심하게 했던 농촌 문제도 완화되었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인지예산센터의 ‘성인지 예산 이제 시작이다’).

성인지 예산은 이런 것이다.


올해 성인지 예산에 대해 더욱 주목하는 것은 처음으로 성인지 결산서가 제출되었기 때문이다. 2009년 성인지 예산서가 제출된데 이어 2010 회계연도 성인지 결산서가 올해 제출됨으로써 성인지 예결산의 법적 시행이 완결되었다.

하지만 2010년 성인지 결산서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평가는 없고 사업만 나열되어 있었다.

국가재정법에서 규정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예산의 수혜를 받고 예산이 성차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집행되었는지를 평가하는 보고서’에 적합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성평등 효과분석’인데 성평등 효과 분석적 측면에 있어서는 예산서보다 성인지결산서가 더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제출된 결산서는 성인지예산이 성평등 증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미흡하다면 어떤 점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전혀 나타나있지 않았다. 다분히 형식적이다.

성인지 대상 사업 자체도 성평등 효과 분석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업이 많다. 애초에 사업 선정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개선되어야 할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듯이, 정부 스스로 성인지 예산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당사자와 전문가들이 ‘집단적’, ‘지속적’ 노력을 통해 정부의 노력을 견인, 또는 강제해야 한다.


여성들은 바쁘다.

누군가는 여성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해야 하고, 누군가는 여성들을 조직화해야 한다.

누군가는 사회 진보를 위해 싸워야 하며, 누군가는 정부의 정책을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도, 그들 중 또 누군가는 성인지 예산에 대해서 고민했으면 좋겠다.

진보정당이 집권하면 정책의 방향도 많이 달라질 것인데 그 방향이 반드시 ‘성평등’한 사회라고 볼 수는 없다. ‘의도치 않은’ 불평등이 야기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작은풀
책과영화2011/08/08 22:27

여자혼자떠나는걷기여행3
카테고리 여행/기행 > 기행(나라별)
지은이 김남희 (미래M&B, 2006년)
상세보기

지은이 김남희는 나이 서른 훌쩍 넘어 세계 여행을 떠난다.
그것도 걸어서.
많은 이들이 꿈꾸지만, 실행하지 못한 것을 해냈다. 그녀는.

이 책은 세번째 여행서다.
중국, 라오스, 미얀마 편.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사는, 속도전과 소비의 관성에 길들여지지 않은 삶.
이미 오래 전에 우리가 잃어버린 삶이 남아 있어 잠시 찾는 이방인을 눈물나게 하는 곳.
타인에게 건네는 환한 미소가 가장 큰 재산인 그들 속으로 들어간다.
맨얼굴의 아시아를 만난다."

2003년의 여행이었으니
지금은 또 많이 변해있을 것이다.
우리도, 변하면서
그들에게, 변하지 말라는 건
이기적인 바람이겠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그대로 였으면 싶다.

자본주의가 유입되자 급속도로 공동체가 붕괴된 라다크에 대한 이야기,
<오래된 미래>가 떠올랐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작은풀
책과영화2011/08/08 22:20

지식의미술관그림이즐거워지는이주헌의미술키워드30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미술
지은이 이주헌 (아트북스, 2009년)
상세보기

아, 재밌다.
나는 그림은 그냥 감으로 본다.
내가 마음에 들면 '좋은 그림'이고, 아니면 '별로인 그림'
크크크. 분류가 매우매우 단순하다.
가끔, 빨려들것 같은 그림을 만나기도 한다.
매혹적,이라는 단어가 걸맞는 그림을 만날 때가 있다.
물론, 미술관을 가는 호사는 기껏해야 1년도 아닌, 2~3년에 한 번?
흐흐흐.
감동은 매우 다르지만, 그래서 나는 책으로 그림을 본다.
아이들에게 사준 '어린이를 위한 세계명화' 따위의 책들은,
사실은 나를 위한 책이었다.
지식의 미술관은 연재할 때부터 챙겨읽었다.
이미 다 읽은 글이지만
그림과 내용을 보강하여 단행본으로 냈다니
이런 책은 소장해서 두고두고 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샀다.
이주헌씨의 글이니, 글에 대해서 토 달면 안된다.
정말 정말 좋다.
그림에 대해 관심 없는 사람도 이 책을 읽으면 미술관에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 것이다.
어느 날, 루브르에 가볼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생을 다하기전에, 그런 날이 올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작은풀
책과영화2011/08/08 22:11
기적의사과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이시카와 다쿠지 (김영사, 2009년)
상세보기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의 필독 도서.
가족과 함께 읽고 독후감을 쓰는게 수행평가 과제였다.
열심히 써서 보냈는데, 수상은 못했다.
나는 우리 둘다 매우 잘 쓸준 알았는데.....  ㅠㅠ


<의돌군>
엄마! 오랜만에 독후감을 써보고 동시에 편지를 쓰게 되는 거 같아. 솔직히 처음에 국어선생님께서 우리에게 가족독후감을 쓰라고 했을 때는 좀 싫었었어. 조금 귀찮았고, 가족 독후감이라는 게 뭔가 좀 어색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였어.

그런데 마음먹고 이 책을 읽어봤는데 읽기 굉장히 잘한 거 같아.

이 책은 일본의 아오모리현의 기무라 아키노리 라는 분의 이야기야. 이 분은 물려받은 사과밭을 무농약으로 재배하는데 도전했어. 그 시대에는 농약을 안 쓰면 사과 수확을 꿈도 꿀 수 없었대. 왜냐하면 평년의 10퍼센트 이하 수확이라는 큰 피해를 입은 나무는 이듬해에 꽃을 피우지 못하게 되고 꽃이 안 피면 당연히 열매도 맺을 수 없기 때문이었지. 즉, 무농약 재배를 2년간 계속하면, 사과 수확은 거의 확실하게 제로가 된다는 뜻이야.

그리고 사과는 19세기 이전의 사과와 이후의 사과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게 바로 품종개량과 농약의 발명 때문이라고 해.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무농약 사과를 재할 수 없게 된 거지.

현대에는 고전적 농약이라 불리는 석회 유황 합제나 보르드액이 19세기 중만에 발명되었는데 농약이 생긴 이후에는 사과 스스로 병충해를 이겨낼 필요가 없게 된 거지. 농약이 그 역할을 대신 해주니까 품종개량은 보다 크고 달콤한 사과를 만드는 목적으로 발전하게 된 거야.

야생 사과는 사라지고 농약에 길든 사과 탄생!

고집이 센 기무라 씨는 이런 역사적 배경과 상관없이 사과 무농약 재배에 도전했지.

사과 꽃이 피는 5월, 꽃의 개화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대. 6월에 들어서도 걱정했던 병충해 피해는 거의 없었대. 기무라 씨는 자신이 엄청난 발견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대. 이때만 해도 좋았지.

그러나 상황이 순조로웠던 것은 처음 2개월 뿐 이었고, 7월로 접어들자마자 잎에 이상 현상이 나타났어. 사과 잎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한 거야. 처음에는 떨어진 잎이 그리 많지 않았어.

그 전에 기무라씨가 농약을 줄여 보려고 할 때도 다소 병에 걸리기도 했기 때문이지. 기무라 씨도 이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였대. 그런데 그게 멈추지 않았어. 잎이 점점 누렇게 변하더니 7월 말에는 잎이 절반 이상이나 떨어져 버리고 8월 무렵에는 남아있던 잎이 거의 없게 된거지.

그 뒤로 새잎들이 열심히 나긴 했지만 그것들도 눈 깜짝할 사이에 ‘반점낙옆병’ 이라는 병에 걸렸어. 잎에 다갈색 반점이 생기고, 머지않아 잎 전체가 노란색으로 변해 떨어져 버리는 병이야. 사과 병의 정체는 곰팡이나 균인거야. 기무라 씨는 이듬해 2군데 밭을 무농약으로 바꿨고 그 다음해에는 전체를 무농약으로 바꿨대. 사과 수확은 제로가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논이 있어 수입은 있었대. 거의 제로에 가까웠지만. 그 방법만이 성공의 길이라고 생각했었대.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건이었지.

무농약으로 바꾼 지 3년이 지나고 4년째 접어들어도 사과 꽃은 전혀 필 기미를 보이지 않았대. 주위 친구나 농가들이 충고를 해줘도 고개를 가로젓는 바람에 기무라 씨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심지어 파산을 의미하는 ‘가마도케시’ 라는 별명을 듣게 되기도 했지. 집안형편도 어려워지고, 매우 가난해졌었대.

그러던 어느 날 깜빡 잊고 물건을 놓고 갔던 아내가 밭에 돌아왔다가 우연히 기무라 씨가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았어. 그것은 사과나무였어. 기무라 씨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마다 붙잡고 말을 했어. ‘힘들게 해서 미안합니다. 꽃을 안 피워도 열매를 안 맺어도 좋으니 제발 죽지만 말아 주세요’ 라고 말이야. 사과나무에게 사과를 한 거지.

‘무농약으로 사과를 재배한다.’ 그것은 기무라 씨의 천명 이었어. 그 꿈은 무너진 것처럼 생각됐어. 기무라 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거든.

오죽하면 사과나무에게 살아남아 달라고 부탁을 했겠어.

나도 정말 궁금했어. 사과나무는 기무라 씨의 말을 알아듣고 살아날까?

나는 기무라 씨에게 말해주고 싶었어. “힘내세요. 제발 포기하지 마세요.”

땅만 보던 기무라 씨는 퍼뜩 정신이 든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았고, 밧줄 한 뭉치를 봤대. 도저히 답을 낼 수 없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떠오른 것이야.

그런데, 그 해답은 사실은 해결을 위한 해답이 아니었어.

기무라 씨가 죽을 결심을 한 거였어!

아무도 발견할 수 없는 곳까지 올라가서 죽겠다고 생각한 기무라씨가 산으로 한참 올라갔는데 이상한 게 눈에 뜨였어. 달빛 아래 산속에 사과나무가 있었던 거야. 그 사과나무는 건강한 잎이 무성했어. 하지만 그 나무에는 농약 한 방울조차 닿았을 리가 없지. 산 속에 있으니까.

기무라씨는 나무를 향해 달려갔어. 그것은 도토리 나무였어. 사과나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도 심장의 고동은 멈추지 않았대.

기무라 씨가 도토리나무가 건강한 잎이 무성한 이유를 깨달았어. 흙 때문이었어. 흙! 흙이 전혀 달랐던 거야.

기무라 씨는 지금껏 퇴비를 주고, 양분을 뺏기지 않게 잡초만 깎아 주었거든. 잎의 상태만 신경 썼을 뿐, 사과나무의 뿌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지.

그 다음은 기무라 씨가 깨달음을 얻고, 다시 힘을 얻어 노력을 해서 성공한다는 내용이야.

뭐, 그 뒤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나와.

사과가 겨우 열리긴 했지만 탁구공만해서 팔 수 없었던 일.

그 다음해에도 사과를 팔러 나갔지만 별로 팔리지 않았던 일.

사과가 열린 게 끝이 아니더라고.

엄마, 나는 이 책을 읽고 ‘포기하지 말고 자신이 얻고자하는 무언가를 노력하여 얻으려 한다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배웠어.

기무라 씨가 얼마나 오랫동안 노력했는지에 비춰보니까 내가 지금까지 ‘노력했다’, ‘열심히 했다’라고 했던 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

그리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이 뭔지 좀 더 깊이 고민해서 확신을 가져야 할 것 같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

나중에 엄마가 증인이 되어주면 좋겠어.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꿈을 이뤘을 때 그 꿈이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걸 엄마가 말해줬으면 좋겠어.

지금부터 날 믿고 지켜봐줘. 한 번 실패했다고, 내 인생이 실패한 건 아니야.

나도 ‘기적의 사과’를 열리게 하겠어.


<학부모>

의연아, 정말 오랜만이다. 문자와 페이스북으로 소통하다 편지를 쓰려니 생각보다 어색한 걸. 엄마가 중학생, 고등학생 때에는 편지를 참 많이 썼어. 우리 집 창고를 찾아보면 그때 친구들과 주고 받은 편지가 커다란 상자로 한 가득 있어. 대학생 때는 물론 아빠와 주고 받은 편지가 있지.

의연아, 엄마는 너에게 편지를 쓸 수 있게 해준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가족독후감이라는, 좀 쑥스러운 과제물로 인하여 너와 아날로그 방식의 소통을 하게 되다니. 너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엄마는 네가 ‘기적의 사과’를 선택해서 깜짝 놀랐어.

이틀 만에 4권의 책을 다 읽은 속도도 놀랍긴 했지만, 엄마는 좀 더 말랑말랑한 책을 택할 줄 알았거든. 네가 쓴 편지를 보니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 책을 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눈 앞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너를 믿어 달라는 것.

너의 노력을 지켜봐 달라는 것.

엄마에게 그런 말이 하고 싶었구나.

엄마는 진심으로 너를 믿어. 너의 장점과, 너의 가능성과, 너의 능력을 믿어. 엄마가 직장 생활하느라 너를 살뜰히 챙기지 못했는데, 너는 지금까지 엄마의 기대보다 훨씬 더 잘해왔어. 정말 멋진 아이야, 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너에게 종종 ‘부정의 언어’를 내뱉는 것은, 사실은 엄마가 부족해서야.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고.

엄마가 기무라 씨처럼 인내심이 강하고, 선한 마음을 가졌다면 표현이 달랐겠지. 엄마는 아직 사과나무에게는 ‘농약’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나봐.

사과나무가 가지고 있는, 사과나무 본연의 내적 ‘힘’을 믿는다면 기다릴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 조급해지는 것이지.

어쩌면 근본적인 문제는 그걸 꺼야.

사과나무에게나 인간에게나.

농약을 뿌리고, 제초제를 치고, 비료를 주고 그래야만 사과나무가 병해충의 공격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자라 크고 단 사과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사과농사란 본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지.

인간은 또 어떠니?

죽어라 공부해서 시험점수 잘 받고,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에 가야만 인생이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것.

엄마는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엄마도 그게 너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왜냐하면 모두가 그렇게 사니까.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렇고, 이 나라의 대다수 학생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한 번의 시험이 너의 인생을 어긋나게 할 수도 있으니까.

의연아, 사과나무는 행복했을까?

잘 몰랐을 꺼야. 다른 사과나무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다른 삶이 있는지 몰랐을 꺼야.

자기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어떤 힘이 있는지 모른 채 농약에 의존하고, 비료에 의지하고, 제초제에 기댔을 꺼야. 그게 자기를 약하게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럼 기무라 씨네 사과나무는 행복했을까?

말라 죽어버린 수백그루의 사과나무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 생각을 하면 엄마는 조금 슬퍼. 이미 농약, 비료, 제초제에 익숙해져 버린 사과나무들이 자신의 힘을 찾지 못한 채 죽어간 거잖아.

인류가 조금 더 빨리 기무라 씨와 같은 시도를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연아, 엄마가 가장 감동받았던 것은 기무라 씨가 사과나무에게 말을 했다는 점이야. 사과나무를 ‘한갖’ 나무로 생각했다면, 인간보다 하등한 식물 정도로 생각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는 사과나무를 동등한 개체로 생각했어!

사과나무뿐 만 아니라 온갖 벌레와 풀들도 무시하지 않았어.

인간이 식물에 해를 끼친다고 ‘해충’이라고 부르는 벌레들조차 존중했어.

‘기적의 사과’는 기무라 씨 말대로 기무라 씨가 만든 건 아닌 것 같아.

사과나무 스스로의 노력이 제일 중요했고, 그 다음은 벌레와 풀, 흙의 노력이었지. 기무라 씨는 모든 생명을 존중했을 뿐이야.

아끼고, 사랑하고, 무엇보다 믿어줬지.

기적은 그렇게 만들어 지는 것인가 봐.

의연아. 너는 사과나무야. ‘기적의 사과’를 맺는 사과나무가 되길 바래.

그건 보통 사과나무가 되는 것보다 훨씬 힘들 꺼야.

네가 작은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길 바래.

경쟁보다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의 기쁨을 누리길 바래.

무엇보다 네가 행복하길 바래.

농약을 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겠지만 엄마도 노력할게.

‘기적의 사과’를 위하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책과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_소심하고 겁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여행  (0) 2011/08/08
2011_지식의 미술관  (0) 2011/08/08
2011_기적의 사과  (0) 2011/08/08
2011_해변의 카프카  (0) 2011/08/08
2011_커피의 역사  (0) 2011/05/12
2011_샘에게 보내는 편지  (0) 2011/05/11
Posted by 작은풀
책과영화2011/08/08 22:03

해변의카프카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일반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2010년)
상세보기

왠지 해변에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책,이라고 생각해서 휴가에 챙겨갔다.
결론은, 바다에 집어던질 뻔 했다는거.
한번 집어든 책은 어쨌든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혹시 끝까지 읽으면 재미있어 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상,하 두권의 책을,
요즘 나온 책이었다면 5권쯤으로 풀어놔도 좋았을 만한
글씨 빽빽한 옛날 판으로
꾸역꾸역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애초에, 하루키 책을 읽는게 아니었어.'
라는 생각만 반복해서 들었다.
우리나라에 엄청나게 많이 있는 하루키 팬들이 보면
날 잡아먹으려 들지도 모르지만
(하루키 팬 여러분,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신다면 용서해주세요......굽신굽신....)
암튼, 내 취향은 아니다.
스토리와 상관없는 심리묘사를 따라가는건 너무 피곤하다.
첫장을 읽으면 끝을 예상할 수 있는데, 정작 퍼즐은 아귀가 잘 안 맞는다.
종합적으로는, 기묘한 일본 이야기를 접한 기분이다.
으으으으.......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Q84" 도 빌려놨는데 집어들 엄두가 안난다.
읽을까 말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책과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_지식의 미술관  (0) 2011/08/08
2011_기적의 사과  (0) 2011/08/08
2011_해변의 카프카  (0) 2011/08/08
2011_커피의 역사  (0) 2011/05/12
2011_샘에게 보내는 편지  (0) 2011/05/11
2011_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알려준 고양이  (0) 2011/05/11
Posted by 작은풀

[진보여성웹진]

올 여름, 여성주의 책으로 에너지 충전!

2011.7.20

박선민

(곽정숙 의원실 보좌관)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다. (술자리는 즐긴다.)

사람들은 종종 음주가무와 거리가 먼 나에게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냐고 물어본다.

어제도 우연히 만난 다른 보좌관의 부인이 물어보는데 “일하면서 풀어요.”라고 대답했다.

아마, 좀 재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그동안 쌓였던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풀린다.

그런데 어느 날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못 읽거나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못 보면 그게 더 큰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문득 깨닫고, 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다 떨기(뒷담화가 포함된)나 맛있는 음식 먹기, 좋은 경치 구경하기, 여기저기 걸어 다니기가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히 좋은 사람들과 같이 위와 같은 것들을 즐기면 근심걱정 사라지고, 온 몸에 엔돌핀이 솟아나온다. 에너지 충전이 완료되면 다시 열심히 일할 의욕이 샘솟는다.

어쨌든 아직도 책과 영화는 나에게 가장 강력한 배터리다.

올 여름, 여성주의 책과 함께 에너지를 충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추천 순서는 없다.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복잡한 이론서는 포함하지 않았다. 오래된 책도 많다. 베스트셀러도 여러 권 포함되어 있으니 이미 다들 읽은 책 일지도 모르겠다. 아래 적힌 10권을 다 읽었다면 그대는 나의 소울메이트!)


1. 불량소녀백서 (김현진, 2005)

저자는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한없이 사랑스런 그녀들이 내가 했던 삽질과 내가 박살냈던 삶의 과정으로 걸어 들어갈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팠다. 아, 내가 십대 때, 스무 살 때, 그놈하고 자지 말라고, 그런 말 듣고 참지 말라고, 연애에 목숨 걸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는 언니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내 삶에 윤기가 있었을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을 진리인 줄 알았던 내 소녀시대를 생각하며 나는 종이 위에 쓴다. 불량소녀백서, 라고."

그리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나'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나'가 되고 싶다면 당신이 바로 불량소녀라고!

‘우리 매대에 놓인 상품이 아니’라고 말하고, ‘불평을 하자, 신나게’, ‘이런 남자하고는 절대로 자지 마라’는 충고를 접수하고 ‘불량소녀로 당당히 살자’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정말 미치게 사랑스럽다. 우리 불량소녀들.



2.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2009)


이 책의 주인공은 ‘못생긴 여자’다.

‘성공 신화’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잘 생겼다’는 것은 하나의 스펙이기에 못 생겼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실패라고 본다. 성형수술이 각광 받고, 외모 가꾸기 관련 산업이 성행한다.

가난하고, 못생긴 여성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지만 이 책은 못 생긴 여자에게도 ‘삶’이 있다고 말한다. (당연하다고? 세상을 모르는군.)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잃고, 다시 사랑을 하고, 아이의 똥을 닦아주며 살아간다. 늙어간다.

우리 모두는 상처를 안고, 또 다시 사랑하며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세상 무엇보다 위대하다.

못생긴 여자와 그녀를 사랑한 그를 통해 세상의 통념을 비틀고, 삶의 위대함을 찬양한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카스테라」의 작가 박민규가 쓴 책이다. 나는 그를 이 시대의 천재작가라고 부른다.


3. 나는 내 그림 속에 있었다. (로다 자미, 1997)


그녀의 그림은 보기가 불편할 정도로 현실적이며 상징적이다.

(자화상 속의 그녀는 언제나 콧수염이 있다.)

1970년대 페미니스트들의 우상 남미의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

그녀는 1930~40년대 멕시코 벽화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이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벽화예술가 디에고 리베라의 부인으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치열한 혁명가로, 뛰어난 화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프리다’는 '자유'라는 뜻인 "Friede"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소아마비, 교통사고 등으로 평생 30번의 수술을 받는 등 자신의 힘으로 몸을 움직이기 조차 쉽지 않았던 고통 속 인생이었지만, 그림 속에서만큼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다.

남미의 혁명적 벽동기에 당대 좌파 그룹들과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며 역시 사상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열정적으로 살았다.

죽을 때까지 스탈린주의자였으며 멕시코의 정체성을 고수했던 그녀의 그림과 만나보자.

(피카소, 트로츠키가 역사 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이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모두가 살아있던 사람이구나.........)



4. 플라스틱섹스 (이남희, 1998)


이 책은 젊은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다. 젊은 애들 이야기라 속도감 있고 재밌다.


초록이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언닌 그렇게 느껴? 난 이게 편하고 좋은데."

"하지만.... 뭐랄까.... 여지껏 내 취향은 남자였어."

"그렇겠지. 음. 그럴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좋으면 그걸로 된 거잖아? 무슨 말이 필요해?"

"하지만 편치는 않아. 뭔가가 자꾸 걸려."

자신이 느끼는 거리낌을 설명하기가 어려워 은명은 초조해졌다.

초록이가 다시 하품을 하곤 피식 웃었다.

"말하는 거하곤 다르네!"


나도 그랬다. 말로는 “그게 뭐 어때서?”라고 하면서, 말하는 거하고는 다르게 뭔가가 자꾸 걸리는 느낌.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그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차원의, 마지못한 인정이 아니었는지 반성했다.

소설 자체는 덜 익은 사과 맛이다.

동성애에 대한, 여성에 대한 작가의 표현은 ‘서걱거리는 느낌’을 가중시킨다.

쉽고 가볍게 읽기는 좋지만 조금만 더 깊이가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5. 붉은 포대기 (공선옥, 2003)


"붉은색"은 삶에 대한 강렬한 희망과 여성성의 상징이라고 한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이 책은 여성의 삶에 밀착되어있는 소설이다.

삶은, 어디로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가는가.

작가의 시선은 ‘모성’, 그 징글징글한 아름다움에 집착한다.

이 책에서 ‘가정’은 일정한 정형을 갖지 않으며 가정의 본질은 오로지 모성에서 시작하여 모성으로 완결된다.

남자에게 버림(!)받고, 유부남이 된 그 남자에게 또다시 상처 받는 주인공은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여성’으로서 삶을 나누고, 여동생의 삶과 사랑에 대한 존중을 통해 비로소 자신에게서 벗어나 가족과 세상에 대해 '공동체'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

붉은 포대기는 용서와 화해, 치유, 계승의 상징이다.

푸른 포대기도, 노란 포대기도 아닌 붉은 포대기는 얼마나 강렬한 상징인가.

위대한 모성. 그것이 한 가정과 한 여성의 내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향하여 전진할 때에 더욱 가치가 있을 것이다.

다만, ‘붉은 포대기’는 남성중심의 사회에 대한 도전이며 강렬한 상징이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을 깨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점은 한계다.

따뜻한 작가의 감성 때문인지도.



6. 불꽃의 자유혼, 허난설헌 (김신명숙, 1998)


신선세계를 바라보며


허난설헌


구슬꽃은 하늘거리고 파랑새는 나는데

서왕모는 기린 수레타고 봉래섬으로 가네.

흰 봉황 수레에 오색 깃발 휘날리고

붉은 난간 기대어 예쁜 풀을 뜯네.

푸른 무지개 치마는 바람에 날리고

구슬고리와 노리개는 소리내며 부딪치는데

흰옷 입은 선녀들 쌍쌍이 거문고를 뜯고

구슬나무 위에는 봄구름이 향그러워라.

동틀 무렵에야 부용각 잔치는 끝나고

푸른 바다의 청동은 흰학을 탄다네.

보랏빛 퉁소 소리에 무지개가 날리면

이슬젖은 은하수에는 새벽별이 떨어지네.


"감정아, 내 사랑하는 딸아" 로 시작하는 13장 '잉모도의 꿈' 첫 머리에 나오는 허난설헌의 시다. 잉모도는 ‘신선이 노니는 곳이며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조선의 여인들이 조선의 여인됨이 후회스럽지 않은 곳’이다.

허난설헌이 처한 조선의 현실도 녹록치 않아 ‘긴 시간 지나지 않아 꿈같은 섬 잉모도는 토벌 당하고, 산속 깊은 곳에 만든 또 다른 여인마을도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허난설헌은 ‘허나 끝이란 그리 쉽게 오지 않는 법’이라고 한다.

소름이 돋았다. 모두 토벌 당하고, 사라졌지만, 그대 아는가? 끝이란 그리 쉽게 오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오늘 여기 우리가 있지 않은가. 잉모도의 꿈을 간직한.


"그런 암흑의 시기에도 한 줄기 빛은 있었다. 어느 시기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여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밝은 의식을 가지고 분노할 줄 아는 그녀들은 바람과 구름과 안개가 전해주는 여자들의 땅에 대한 소문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들은 난설헌과 두란향과 감정과 옥지와 설란의 딸들이었다. 그녀들 사이에서는 난설헌이 남긴 책에 관한 얘기가 은밀히 전해졌다. 이 세상 어딘가에 여자들의 아름다운 꿈을 노래하고 그 꿈을 이룰수 있는 길을 밝혀준 소중한 책 하나가 숨겨져 있어. 그 책이 세상에 나오는 날, 우리 여자들은 여자들의 땅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오늘도 그 책은 여성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눈길로 읽히고 있다.

이 땅에 신선세계를 건설하고, 선녀처럼 살고자 하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난설헌이 남긴’ 책을 읽는다.


7. 오빠는 필요 없다 (전희경, 2008)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누가 금지 시키지도 않았지만, 금기가 되어버린, 운동권 사회의 가부장에 대한 이야기.

구구절절 어찌나 바른 말들이 쓰여 있는지, 읽으면서 완벽하게 공감하는 나에게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이 책을 읽고 후배와 이야기를 나눴다.

"다 맞는 이야긴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니? 우리가 당사자라 그런가봐."

바꾸고 싶지만, 바꾸지 못했던 당사자. 날마다 겪으면서 '이건 문제에요.'라고 말하지 못했던 당사자.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해 버렸던 당사자.

지금 다시 시작하라고 한다. 포기하지 말고.

말하자, 오빠 따위 필요 없다고.

그런데, 편집이 너무 후지다. 확확 쳐내면 책이 반은 얇아지겠다. 동어반복이 많다.
 여성주의가 꼭 '어려운 단어'를 동반 하는 건 아닌데 말을 어찌나 꼬아서 하는지. 읽다가 인내심 폭발할 수도.



8. 이어달리기 (난나, 2006)


일하는 여성들에 관한 열 가지 이야기다.

여성의 삶, 여성의 노동에 대해 만화와 짧은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쉽게' 전한다.

이어달리기.... 제목이 정말 좋다.

혼자 뛰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아득함은 말할 수 없는 절망이 되는데, 내가 이만큼 뛰고 나면, 그 다음 주자가 또 있겠지 생각하니, 뛸만한 것도 같다.

지난 번 ‘나는 내년에도 일할 수 있을까’를 읽고 많은 사람이 의견을 줬다.

일하는 여성, 특히 아이가 있는 여성들은 격하게 공감했다.

아이가 있는 남성들은 ‘우리도 힘들어요.’라고 했다.

아이가 없는 여성들은 ‘나도 이렇게 될까봐 걱정돼요.’라고 했다.

아이가 없는 남성들은 ‘힘들게 사시네요,’라고 하긴 했지만 전혀 와닿지 않아 했다.

이렇게 분류하는 게 사실 참 우스운 일인데, 어쩌면 이렇게 공통된 반응이 나오는지 그건 더 우스웠다. 이 책은 일하는 여성들만 읽기 바란다. 읽어도 공감하지 어려울테니.


9.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2007)


나는, 공지영이 부러웠다.

베스트셀러 작가여서가 아니라 베스트셀러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세번 결혼하고, 성이 다른 세아이를 키울 만큼 자기 삶에 당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물론 작가는 당연히 '소설'이라 했지만- 당당함의 이면에 다른 사람과 꼭 같은 고민, 같은 갈등, 같은 고통이 있었구나 싶어, 미안하게도, 마음이 놓여버렸다.

내 마음과도 꼭 같아서, 자꾸 눈물이 솟았다.

"엄마 글 잘 쓰게 기도해줘.......... 막내까지 대학 보낼 수 있을지............. 무서워."

"생각해 보면, 혁명의 환상이 깨어지던 순간부터, 혁명보다 지독한 일상이 우리에게 밀려들기 시작했다. 네 아빠와 나는 점점 말이 없어져갔다."

"탈출구가 없었고, 엄마는 멍하니 텔레비전만 보며 엄마의 이십대 후반을 보낸다. 너는 크고 있었고, 우리는 여전히 가난했어."

"하지만 엄마는 그때 한 글자도 더는 쓸 수가 없었어. 그렇다고 집을 떠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고 개선의 희망조차 없는 삶......... 그때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안이한 선택을 하게 되었단다. 그건 그냥 나를 희생하고 말기로 한거지."


나는 지금, 가장 안이한 선택을 했다. 맙소사. 슬프다.
(주인공은 즐거운 '우리' 집을 버리고,  즐거운 '나'의 집을 만든다. 남들이 뭐라든, 참 괜찮은 방법이다.)



10. 작은 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 (장차현실, 2008)


“장애와 비장애, 성별과 나이의 벽이 없는 또리네 집 이야기”

기분 좋고 싶어서 읽은 책이다.

기대대로, 읽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주 유쾌해 졌다. 하트 뿅뿅.

작가는 알까? 장애아를 키우는 싱글맘의 삶에 부러운 마음 날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작가가 일곱살이나 어린 젊은 남자와 동거하게 된 것은 그 부러움의 정점이었다.

물론, 동거하지 않았다 해도 작가의 삶은 상당히 부러웠다.

세상 앞에 당당하고,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싸우는 그녀의 모습이 세상과 싸우기에 지쳐가는, 이제 좀 적당히 타협하고 싶어진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게 한다.

힘내라, 멋진 가족!


불량소녀백서
카테고리 자기계발 > 자기능력계발 > 여성을위한조언
지은이 김현진 (한겨레신문사, 2005년)
상세보기

죽은왕녀를위한파반느 상세보기

나는내그림속에있었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로다 자미 (창해, 1997년)
상세보기

플라스틱섹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이남희 (창작과비평사, 1998년)
상세보기

붉은포대기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공선옥 (삼신각, 2003년)
상세보기

허난설헌1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신명숙 (금토, 1998년)
상세보기

오빠는필요없다:진보의가부장제에도전한여자들이야기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복지 > 여성학 > 여성학/페미니즘
지은이 전희경 (이매진, 2008년)
상세보기

이어달리기여성과일에대한열가지이야기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복지 > 여성학 > 여성학에세이
지은이 난나 (길찾기, 2006년)
상세보기

즐거운나의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가족/성장소설
지은이 공지영 (푸른숲, 2007년)
상세보기

작은여자큰여자사이에낀두남자
카테고리 만화 > 명랑/코믹만화
지은이 장차현실 (한겨레출판사, 2008년)
상세보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작은풀

[진보여성웹진]

 

나는 내년에도 계속 일할 수 있을까?

 

2011.6.20

박선민

(곽정숙 의원실 보좌관)

 

나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8년째 일하고 있다.

당내 최장기 근속 보좌관이며 유일한 여성 정책 수석 보좌관이다.

자랑이 아니다. (자랑일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더 많은 동지들이 지속적으로 일하기를, 더 많은 여성들이 자기 역량을 최대 발휘 할 수 있는 지위에 있기를 바랐다.

결론적으로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 첫해 첫걸음을 함께 한 보좌관은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었고, 진보정당 내에서도 여성들은 수석 보좌관이 되기 어려웠다. 17, 18대를 통틀어 봐도 여성 정무수석은 2~3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민주노동당은 직급보다 역할이 중요하다. 수직적 상하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연대 속에서 일하기를 지향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여성의 ‘역할’이 ‘지위’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상황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보좌관이라는 특수직을 빗대어 당내 상황을 일반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당은 당대표, 최고위원, 대변인 등 주요 당직에 뛰어난 여성 지도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다수의 지방의원과 지역위원장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희망의 증표다. 생물학적 여성의 진출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개척’은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내 상황을 다시금 환기하는 것은 이것이 여성이 처한 사회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민현주·임희정(2010)이 노동부가 발표한 2009년 여성의 고용동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9년 여성취업자는 977만2천명으로 전년대비 10만3천명(1.0%) 감소하였는데 이는 2003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한 것이라고 한다. 같은 기간 남성 취업자 숫자는 3만1천명 증가하였다. 반면 2009년 여성 실업자의 경우 전년대비 4만 명(15%) 증가한 30만4천명으로, 2005년 이후 감소세를 지속하다 증가로 반전하였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여성의 고용변화는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남녀 모두 40대 이하에서 일자리가 감소하였으나 여성의 경우 20~39세가 가장 타격을 받는 집단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성들은 20대 초반의 청년 고용의 상황이 악화된 반면 여성은 30대 여성의 고용불안정, 또는 노동시장 이탈율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들의 분석을 들여다보자.

남성의 경우 안정적으로 상용직을 유지한 집단의 비중이 가장 높아서 22.8%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지속적 실업이나 비경제활동 상태를 유지하는 집단으로 약 22.0%, 지속적으로 자영업에 종사하는 집단이 19.4%로 나타났다. 임시직이나 일용직 집단도 약 17.6%나 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남성 노동시장은 소규모의 안정적 고용집단과 대규모의 불안정 고용 또는 실업 집단으로 집단화되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여성에 대한 분석 결과는 남성보다도 열악했다.

여성은 지속적으로 상용직 상태를 유지하는 집단 구성에서 아예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지속적 실업이나 비경제활동 상태가 33.1%였으며, 일용직이나 임시직에서 실업이나 비경제활동 상태로 전환한 집단이 약 12.1%에 달하였다. 무급가족 종사자의 비중도 6.8%나 되며, 이들마저도 실업이나 비경제활동 상태와 무급가족 종사자의 지위를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위기는 여성 차별을 본격화하였고, 자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성을 노동시장에서 배제하고 있다. 고용에 있어서 발생한 성별에 따른 차별은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를 하락시키고 향후 더욱 위축시킬 것이다. 특히 30대 여성의 고용불안정, 노동시장 이탈은 이와 같은 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다.

 

나는 종종 나를 아끼는 사람들로부터 “보좌관을 계속 할 생각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하고 싶다”고 답한다. 계속 일하고 싶지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나는 내가 처한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진보정당이라 한들 어느 누가 아이 셋 키우는 아줌마를 선뜻 수석 보좌관으로 기용하고 싶겠는가. 나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이런 현실을 알고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을 하는 것이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구전된다는 것도 불쾌하다.)

같은 조건의 결혼을 안 한 남성과 여성이 있다면 ‘여성’을 채용하고, 결혼을 한 남성과 여성이 있다면 ‘남성’을 채용한다는 것이다.

결혼을 안 한 여성은 부리기가 좋고, 결혼을 한 남성은 책임감이 강하다 이유다.

많은 이들이 기혼 여성은 아이와 집안일을 사유로 회사 일을 등한시 한다고 생각한다.

매우 불쾌하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나도 그렇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아이의 학교 준비물을 챙기고, 숙제해라, 밥 챙겨 먹어라 잔소리를 해야 하고, 스쿨뱅킹 통장 잔액도 확인해야 한다. 다이어리에는 나의 회의 일정과 함께 아이의 현장학습일, 시험일정이 적혀있고, 국정감사 전에는 한 달 간 끄떡없도록 밑반찬 열두 가지를 만들어 냉장고에 쟁여놓는 신공을 발휘해야 한다. 또, 남편이 집에 없는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린이집 야간 보육이 끝나는 10시 이전에는 퇴근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집안은 대체로 엉망진창이며 빨래는 늘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아토피가 심한 아이에게 냉동식품, 가공식품을 먹이고, 그나마도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도 못한다. 담임선생님 성함은커녕 아이가 몇 반인지도 늘 헷갈린다. 딸아이는 몇 년째 달리기 대표선수로 뽑혔지만 나는 아이가 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이의 이가 썩어가고 있지만 치과를 데려갈 짬도 내지 못하고 있다.

기혼 여성이라는 사회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퇴근 뒤에도 집에서 일을 해야 한다. 더 성실해야 하고, 더 완벽해야 한다. 진보정당 보좌관일지라도 여성이 처한 사회적 현실에 맨 몸으로 맞서야 한다는 점은 똑같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린다.

나도 ‘지속적으로 상용직을 유지하는 집단’의 일원이 되고 싶다. 30대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 비율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싶지 않다.

 

과연 나는 19대 때에도 보좌관으로 일할 수 있을까?

만약 경력 8년의 남성 보좌관이라면 그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아마도 당내 간부가 되거나 출마를 할 것이다. 그가 원내에 있고 싶다면 서로 함께 일하려 할 것이다. 그에게 미래는 불안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생존조차 확신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택하는 것이다. 아이를 잊고, 집안일에 신경 끄고, 나의 일상을 버리고, 쉬지 않고 일해 실력을 인정받는 것뿐이다. 이 선택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강제다.

 

고민은 여기서 출발한다. 이것이 과연 유일한 방법일까?

나의 노동력이 ‘상품성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해야 할까?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궁극적으로 살아남는 것이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돕는 길일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과정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

진보정당에서 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 어디서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언제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작은풀

[진보여성 웹진 05] 고양이, 갈매기의 엄마가 되다

2011.5.20

박선민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입양의 날, 성년의 날 등등 가족과 관련한 다양한 기념일이 5월에 몰려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보통 ‘가족’이라고 하면 부부를 중심으로 부모와 아이가 있는, 이성애 유배우자 유자녀 모델을 떠올리게 된다.(이 글에서는 이런 형태의 가족을 ‘전통적 가족’이라고 표현하였다.) 씨족사회도 아닐 진데 우리가 떠올리는 ‘가족’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혈연’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변화는 인식보다 한 발 앞서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2010)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 가구 비중은 1980년 5% 미만에서 2005년에는 25%까지 증가했다. 또, 5가구 중 1가구가 비(非)가족 가구로 나타났다.

단독 가구, 비가족 가구는 혼인과 혈연에 기반한 전통적 가족과는 전혀 다른 범주의 가족이다.

김수정(2007)은 이러한 가족의 변화 방향을 ‘그 가족(the family)’으로 부터의 탈피라는 의미에서 ‘탈가족화’로 명명했다.

김혜영(2008)은 전통적인 가족인 직계가족과 전형적 근대가족인 핵가족은 감소하는 반면, 1인 가구, 맞벌이 부부, 다문화 가족, 조손가족, 재혼가족, 여성가구주 가구 등 비(非)정형 가족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다양한 가족’의 등장에 주목하였다.

탈가족화, 다양한 가족의 등장으로 전통적 가족을 중심으로 발생하던 여러 문제점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고 있다.

예컨대 전통적 가족이 내포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남성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부양자로, 여성은 가정 경제의 보조자로 위치가 설정되었기 때문에 노동시장에서도 여성은 잉여인력(보충인력)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성이 가사와 육아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도 좀체 개선되지 않는다. 성평등이 확산되지 않는 이유, 돌봄노동의 사회화가 획기적 진전을 보지 못하는 이유,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좀체 깨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전통적 가족은 가족의 형태를 넘어서 사회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의 변화는 노예제, 봉건제 사회로부터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기 까지 수 천 년을 지속해온 남성(아버지)으로 대표되는 가장에 대한 일방적 의존을 끝내고 있다(또는 일방적 의존의 종결이 가족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를 전적으로 환영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가족은 기존의 가족이 제공하였던 안전망 기능을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병에 걸리면 다른 가족 중 누군가가 돌봐줬지만 단독가구의 구성원은 아파도 혼자 견뎌야 한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일이다.

게다가 노동시장의 불안정과 불평등이 극심한 한국 사회에서 아무런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외줄타기 보다 위태롭다.

사회적 안전망이 강화되지 않는다면 가족의 변화는 더 많은 고통을 야기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족의 변화를 긍정적 방향으로 진전시킬 수 있도록 집단적 목소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다양한 가족들이 다양한 형태로 집단화 되어야 한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동화를 한 권 권한다.

루이스 세플베다의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알려준 고양이(바다출판사)’다.

(사실 이 책은 생태주의 동화다. 생태주의와 탈가족주의의 만남이라니! 진보적 가치의 미학을 보여준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알려준 고양이'라는 표현은 은유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새에게 고양이가 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것이 잘 상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작가 루이스 세플베다는 칠레 출신으로 반독재 반체제 운동을 하다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오로지 목숨을 구하기 위해 피노체트의 나라에서 도망쳤다. 그 후 그는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유네스코 기자로 활동하였다.

1989년 세플베다는 살해당한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바치는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발표했다. 세풀베다는 이 책의 서문에 이렇게 밝힌다.

"스페인 오비에도에서 티르레 후안상을 수여하게 될 심사위원들이 이 소설을 읽는 사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조직에게, 고급 의상에 손톱까지 깔끔한 자에게, <발전>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자들에게 매수당한 무장 괴한들이 세계 환경 운동가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저명한 인물이자 아마존의 열렬한 옹호자를 살해했다.

사랑하는 친구, 치코 멘데스. 늘 과묵하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활동하던 당신에게 이 책을 전하지 못하지만 감히 나는 티그레 후안상이 당신에게 주는 상이자 하나뿐인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당신이 걸어간 길을 뒤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오."

무겁고, 가슴 아픈 이야기를 가볍고, 경쾌하게 말하는 놀라운 재능을 지닌 작가, 세플베다가 쓴 동화가 바로 이 책이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고 싶은 분들은 이 글을 읽는 것을 멈추는 게 좋겠다.)

이 책의 가장 멋진 점은 진짜로 고양이가 갈매기에게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갈매기가 고양이에게가 아니라, 고양이가 갈매기에게!

엄마 갈매기는 오염된 바다에서 시커먼 폐유를 뒤집어 쓴다. 겨우 항구까지 날아 들어와 고양이 앞에서 알을 낳는다. 엄마 갈매기는 죽기 전 고양이에게 부탁한다. 알을 먹지 말고, 아기 갈매기가 태어나거든 나는 법을 알려 달라고.

이 황당한 상황에 맞닥뜨린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제각각 살던 동네 고양이들은 즉시 모여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갈매기 알을 부화시키는 방법, 갈매기 키우는 방법을 의논한다.

알에서 부화한 아기 갈매기는, 고양이에게 ‘엄마’라고 부른다.

고양이는 그렇게 갈매기의 엄마가 되었다.

동네 고양이들은 갈매기의 가족이 되었다.

고양이들은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마침내 고양이들에게 나는 법을 배운 갈매기는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고양이와 갈매기가 가족이 되고, (가족 이데올로기를 통쾌하게 깨준다.)

이웃 고양이들이 함께 갈매기를 양육하고, (지역 공동체의 복원이다.)

갈매기는 실패를 거듭하며 나는 법을 배우고, (벼랑 같은데서 갈매기를 떠미는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갈매기를 날게 했다면 이 책의 가치는 현저히 하락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들을 백과사전에서 나는 법을 찾는다.)

갈매기는 날아간다. (단독가구, 또는 새로운 가족을 찾아서)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양이가 속삭여준 이 말이 참 좋다.

“날고 싶어 하는 자 만이 날 수 있다.”

 

나는 방법을 아는 자가 아니라 날고 싶어 하는 자가 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사회를 바꿀 방법을 다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정말 간절하게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가.

전통적 가족 이데올로기를 넘어, 새로운 가족을 찾아 높이높이 날아오르자.

갈매기에게나는법을가르쳐준고양이
카테고리 소설 > 기타나라소설 > 스페인(라틴)소설
지은이 루이스 세폴베다 (바다출판사, 2003년)
상세보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작은풀